관객과 네티즌 평점 현격한 차이…"역사 왜곡", "창작의 자유" 엇갈린 논리 '공허'
최근 극장가에 걸린 허진호 감독의 신작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뜨겁다. 이 영화는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유신 헌법과 그 이후 발생한 언론 자유 탄압 조치 등 '박정희 시대'의 현대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개봉 전부터 일각에서는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려졌던 역사의 이면(당시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 등)을 다룬 영화적 시도'라며 지지,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일로에 있다.
이번 논란의 양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판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영화가 정식 개봉해 대중에게 공개되기도 전부터 '역사 왜곡' 프레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씌워졌고, 개봉 직후 포털 사이트에서는 영화를 관람하지도 않은 채 1점을 주는 이른바 '별점 테러'와 매크로 조작 의혹까지 불거졌다.
객관적 지표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티켓 인증을 거친 '실관람객 평점'은 8.9점대(CGV 골든에그지수 92%, 롯데시네마 평점 9.2점)로 높은 만족도를 기록 중이지만, 관람 여부와 무관하게 참여 가능한 '네티즌 평점'은 개봉 초기에 2점대에 머물며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달 23일 개봉 직후만 해도 이 영화는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 9.4점, CGV 골든에그지수 94~95%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개봉 1주일 무렵 온라인과 정치권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본격화되자, 9월 29~30일 사이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이 10점 만점에 2.2점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예매 내역을 인증해야만 참여할 수 있는 '실관람객 평점'은 별점 테러가 집중된 지난 9월 30일 기준, 참여자 1737명 평균 8.2점의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관람 인증이 없는 '네티즌 평점'에는 약 34배에 달하는 5만 9천여 명이 몰려 약 5만 건의 '별점 1점'을 쏟아내며 평점을 2.2점으로 끌어내렸다.
심지어 역사 왜곡을 비난하는 한 1점짜리 관람평에는 당시 영화 누적 관객 수(150만~170만 명)에 맞먹는 137만 개 이상의 '공감'이 비정상적으로 찍혔다가 네이버 조치 이후 5만 건 이하로 줄어드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9월 29일 관람평 중복 등록 및 공감, 비공감 수 중복 집계 오류를 확인, 삭제 조치를 취하고 자동화 도구를 활용한 매크로 조작 정황을 포착해 지난 1일 경찰에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보지 않은 채 만들어지는 이런 논란은 일반 시민들이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민 김모씨는 "워낙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말이 많은 영화이다 보니, 주변에 이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인다"며 "굳이 피곤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관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사 왜곡 논란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영화를 굳이 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보고 싶지 않다"는 이모 씨처럼 역사 왜곡 논란 자체를 역사 왜곡으로 동일시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이씨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대로 연출된 장면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사적 가치관이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아예 보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영화가 이른바 '박정희 배후설'을 단정적으로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린다. 극 중 '중정 윗선'이라는 대사가 등장하지만, 영화가 직접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를 겨냥했는지는 직접 본 관객마다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육 여사 피살 사건과 관련한 의혹 제기는 200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도 다뤄진 바 있으나, 당시에는 지금처럼 작품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극단적 공방으로 번지지 않았다.
여론이 말하는 창작의 기준
그렇다면 대중이 생각하는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영화의 상영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한길리서치가 KNA25의 의뢰로 지난 5~6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1.6%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문제가 있다"고 답한 반면, 37.7%는 "예술 창작의 자유로 문제없다"고 응답했다. 국민 절반 이상은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것에 민감한 거부감을 보인 것이다.
이는 기자가 한림대 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총 95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실제와 다른 가설이나 상상을 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실존 인물의 명예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라는 응답이 62%로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이어 '상상을 담는 것은 납득이 안 됨' 15%, '영화 시작 시에 허구임을 밝히는 자막을 사용하면 괜찮음' 14%, '제한 없이 허용해야 함' 9% 순이었다.
두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대중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도 실존 인물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상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최근 들어 <암살자(들)>을 비롯해 역사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유독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영화를 문화 예술의 한 영역이 아닌 정치적 논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단편적인 정보나 리뷰만 소비하면서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은 확인하지 않은 채 논란만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실존 인물의 명예를 실제로 훼손했는지, 아니면 영화적 상상력의 범위 안에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영화 관람이 선행돼야 한다.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일단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입을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는 늘 다양한 해석을 동반하며, 영화는 그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대중 장르이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지금의 논란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 중심의 정치 논쟁으로 끝날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성찰과 창작의 자유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어지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재혁 대학생 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 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